복음묵상

[스크랩] 예수의 길- 이영재 요셉 신부님의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특전미사 강론 요약

별osb 2014. 8. 31. 16:37

 

지난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물으시죠.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하시는 부분이에요.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시는것을 예고하고 계세요.

 

베드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그런 베드로에게 호되게 꾸짖고,

심지어는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까지 하시는데요,

 

우리들이 찾아야되는것이 있어요.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것과 나의것을 찾아야해요.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찾아야겠어요.

쉽지는 않죠.

늘 헤매게 되는데요.

거기에 전제되는것이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

나의 것, 내게 맡기신 십자가는 무엇인가?

 

요즘 뜨고 있는 영화가 있죠?

명량 보셨어요?

(^^)

 

이순신 장군의 명대사 생각나시나요?

 "싸움에 있어서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것이고, 살고자하면 죽을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안에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우리도 예외일수가 없어요.

하느님이 나에게 맡겨진 십자가에 대해서 피하려고 하면 더 큰 십자가가 올수 있어요.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 일단 피하고 보자라고  생각해요.

 

십자가를 받아들이는것.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짐 이라고 볼수 있는데요,

 

어떤사람이 낙심을 하고 큰 나무에 올라가 자살소동을 벌였어요.

동네 경찰들 스님 목사들이 권유하여 내려오라고 했는데 오히려 더 죽으려고 했어요.

 

마지막에, 신부님이 와서 더 이상 안될거 같아, 그곳을 향해 십자가를 그었어요.

그런데 그사람이 비실비실 내려왔어요.

사람들이 당신은 왜 신부님이 십자가를 그으니 내려왔냐고 물엇어요.

그사람은 "너 거기서 안내려오면 잘라버린다"

그래서 내려왔다고 해요.

 

우스운 얘기같지만, 그만큼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진다는 얘기에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십자가,

내가 짊어져야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제가 있어요. 나를 버리고 가야해요.

 

비워내는것.

사실 우리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들 스스로 많은 부분들이,

그리스도가 아닌것으로 채워져 있어요.

그것을 비워내야해요.

 

 

투명할수록 더 잘 볼수 있어요.

마치 유리창에 내가 원하지 않아도 착색되는 많은 먼지들 때문에,

저쪽 너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요,

비워내는것은 그런 부분들을 닦아내는것이라고 볼수 있어요.

닦아낼수록 더욱 또렷하게 볼수 있게 되죠.

 

 

내가 누구인가를 찾다보면,

서서히 그 안에서 닦아내고 치워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럴때, 또렷이 내가 가야할, 저 너머에 있는 길을 바라보게 되요.

 

 

얼마전 주교님이,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과 다른게 있다고 했어요.

천주교 신자들이 성당을 찾는 많은 경우의 수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해 온다고 해요.

반면 개신교에게 물으면 구원받기 위해 온다 차이가 있다고 하셨어요.

 

 

여러분은 어때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오나요? 구원받기 위해 오나요?

 

표현이 다르지만, 분명히 해야할 부분들이, 우리들의 구원을 먼저 봐야해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해도 구원받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여기에 필히 짊어지고 가야할것이 십자가인데,

나에게 십자가는 어떤것인가...

 

 

때로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사실은 피하고 싶어요.

십자가가 힘들고 고통스러운것을 누구나 다 알아요.

그래서 사실 피하고 싶은것은 본능적일수 있어요.

 

그런데, 이 십자가가 없으면 구원을 이룰수 가 없어요.

그렇기에 주님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신거에요.

아니 그위에서 죽으셨어요.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에 대해서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서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하고,

그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는 이였어요.

 

왜 하느님이신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겠는가를 깊이 깨닫고,

그 스스로 십자가의 신비를 찾을려고 노력했어요.

바오로 사도의 신학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것,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나는것, 구원을 말하는데요,

 

한편에서 보면 이 십자가는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전혀 세속적이고 이윤을 남기지 못해요.

일에 대한 잣대로 보면, 계산이 안되요. 현실안에서 사는것을 힘들게 만들어요.

 

 

에레미야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해요.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뼜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그것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피하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까닭이 있어요.

그 이유는, 이미 내가 맛본 사랑, 그리스도 사랑, 하느님의 사랑 

이것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거부할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요.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도 십가가를 쉽게 놓지 않으셨어요.

 

당신이 겟세마니동산에서 피땀 흘리면서 할수만 잇으면 이잔을 내게서 거두어달라고

기도하셨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길을 끝까지 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기꺼이 죽으셨어요.

 

십자가를 지셨다는 의미죠.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분명히 구원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의미에요.

 

구원의 의미에서 보면,

이것을 우리가 선택하고 지고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피하고 가느냐 이것이 아닌가 싶어요.

 

 

잠시 이순신 장군으로 돌아와서, 이순신은 많은 고난을 받았어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잠시 보면,

 

집안이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때문에 외가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이 지시라 어쩔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동안 고집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해진 후 마흔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엇고 스물 세번싸워 스물 세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빼앗긴체 옥살이를 해야했다.

자금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세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앗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무살의 아들을 적의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과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을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십자가.

우리들이 십자가를 이 세상의 기준에서 볼때

아니다 싶을수도 있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

우리에게 죽으라는 게 아니죠. 오히려 생명의 길로 제시하고 있어요.

물론 마음의 평화를 얻는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돌이켜보았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

당장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뺏을수도 있고 내게 고통을 줄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면

우리에게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앞에 나아갈수 있게 되기를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출처 : 천주교 식사동성당 (성체성혈)
글쓴이 : isabell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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