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7일 오후 02:28
<주님의 길을 걸으며 바치는 기도 - 마르타와 마리아를 묵상하며>
2014. 10. 07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루카 10,38-42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길을 걸으며 바치는 기도 - 마르타와 마리아를 묵상하며>
1986년 여름, 대학교 3학년 때 경상북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열리는 ‘마오로 축제’라는 성소 피정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교구 사제 성소에 대해서는 생각을 했었지만, 수도 성소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던 제가 본당 수녀님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죠.
피정 일정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성소 담당 신부님과의 개별 면담, 수도원 일과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밤까지 같이 기도하는 것, 수도원 곳곳(농장, 목공실, 출판사 등)을 견학하는 것 등이었죠. 2박 3일의 일정 중에서 둘째 날 밤에 수사님들과 피정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다과회를 겸한 만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수사님들의 생활에 대해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수사님들께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물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제가 참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천국 같았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가 지닌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아름다운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내 것 네 것 없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특별히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찌든 제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물음이 생깁니다. 지금 밖에서는 독재 정권에 맞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고 온 몸을 바쳐 투쟁하고 있는데, 과연 수사님들께서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수사님들 자신은 아름다운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계시지만, 밖에 있는 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조금은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이었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는 듯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수사님 한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기도를 합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함께 합니다. 기도로써 함께 합니다.”
당시 대학생으로서, 교회 청년으로서 나름대로 현실 참여를 하고 있던 저는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곱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면 분위기가 영 엉망이 되겠다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요. 수사님들은 이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면서 기도 열심히 하십시오. 그런다고 뭐가 이루어집니까? 지금은 함께 어깨 걸고 싸워야 할 때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주님의 일입니다. 저는 열심히 싸울 것입니다.”
몇 마디의 말이 더 오고 갔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가 삼가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당시 수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이해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 수사님의 몫이 있고, 제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기 고유하게 주어진 주님의 달란트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몫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몫이 최고인양 저에게 강요할 수 없듯이 저 역시 저의 몫만을 최고로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각기 자신의 몫을 가지고 주님 섬기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배고픈 주님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마르타의 모습에서, 주님 발치에 않아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믿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마르타가 자신의 몫을 동생 마리아에게 강요하지 않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일을 결코 하찮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의 시중을 들지 않았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르타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야! 내가 지금 예수님의 시중을 들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구나. 잘 들어 놓았다가 나중에 나에게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 해주겠니. 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구나.” 라고 말입니다.
활동과 관상!
믿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두 가지 몫입니다. 어느 것에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완전히 수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의 달란트, 소질, 관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느 하나에 좀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따르는 길에서 자신의 몫일 것입니다. 이 몫에 충실하면 됩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람을 자신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맞추어서 안 됩니다.
제게 주어진 몫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제 자신을 볼 때 시중드는 마르타의 몫이 저의 몫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동생을 곱지 않는 눈으로 보는 마르타의 불평보다, 언니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는 마리아의 침묵을 배우고 싶습니다.
강론을 마치면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아름다운 일치를 희망하며, 활동가(活動家) 마르타와 관상가(觀相家) 마리아를 묵상하며 만들었던 ‘주님의 길을 걸으며 바치는 기도’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주님의 길을 걸으며 바치는 기도>
착하고 고우신 하느님
정의와 평화의 주님
당신과 함께
당신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 길이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벗들이 함께 함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벗들의 길과 저의 길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벗들에게 주신
벗들이 걷는 당신의 길을
하찮게 여기지도 않고
시샘하지도 않으며
저에게 주신
제가 걷는 당신의 길에
기쁨과 열정으로 충실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