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1일 오후 04:15
상지종신부님 복음 묵상
<용서, 관용, 온유 - 사람에 대한 믿음>
2014. 11. 10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루카 17,1-6 (남을 죄짓게 하지 마라.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고 용서하여라. 믿음의 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용서, 관용, 온유 - 사람에 대한 믿음>
용서, 관용, 온유
이 모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그 참된 의미를 온전히 지닐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상대방에 대한 믿음, 비록 상대방이 지금은 잘못을 범했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그릇됨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될 수 있다는 변화에 대한 믿음,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전제된 용서와 관용, 그리고 온유는 한 사람을 참으로 자유롭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모함이나 질시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유가 이 안에 있습니다.
친근함을 넘어 인격 모독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인내를 가지고 받아들일 때 사랑의 자유를 살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반박함으로써 그와 나 사이에 있게 될 거북함 때문에 마지못해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된 용서도 관용도 온유도 아닙니다. 자신을 고매한 성인군자처럼 남들에게 보이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러한 부자유 속에서 결국 체험하게 되는 것은 위선적인 자아일 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모습뿐만 아니라 내심에서 진정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일 때만이 관용, 온유와 용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들을 돌아봅시다. 얼마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믿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아름다운 하느님 나라를 지금 이 땅에 세우는 밑거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겉모습을 보고 나타내는 상대방의 긍정적인 평가들이 진정 ‘있는 그대로의 나’ ‘나 자신’에게 정당한 것인지 돌아봅시다. 우리가 솔직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이러한 평가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