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4년 12월 26일 오후 05:10

별osb 2014. 12. 26. 17:10

<참 빛을 모신 작은 빛이 되시기를>

2014. 12. 25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요한 1,1-18 (머리글)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참 빛을 모신 작은 빛이 되시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사랑하는 송산 성당 가족 여러분, 성탄 축하드립니다. 아기 예수님의 축복과 평화가 믿음의 벗님들과 벗님들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며칠 전 늦은 밤 경전철을 타고 본당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의정부 시내 곳곳을 성탄 장식등이 밝히고 있었습니다. 새삼 실감했습니다. ‘참 많은 교회가 있구나!’라고. 이윽고 저를 태운 기차가 곤제역에 다다를 즈음,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 본당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아무런 성탄 장식도 없는 짙붉은 벽돌의 우리 본당은, 많은 사람들이 성당인지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듯, 수줍은 모습으로 주위의 어둠에 묻혀 있었습니다.

잠시 마음 한 편에서 ‘그래도 성탄인데, 성당 외부에 이런저런 장식을 좀 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아니야, 이제 곧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그리고 예수님의 빛을 곱게 모시고 세상 안에서 이 빛을 밝혀줄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 송산 성당 가족들이 있는데, 굳이 성당 외벽을 장식할 깨알 같은 전구들이 필요할까? 그래, 아무런 치장이 없는 저 모습이 우리 본당의 아름다운 모습이야.’라는 깨달음이 저를 흔들었습니다. 참 빛과 참 빛을 곱게 모신 작은 빛들이 함께 온 세상을 비추는 작은 꿈이 마음 가득 넘쳐났습니다.

이 꿈이 오늘 이루어졌습니다. 기쁨과 희망 가득한 설레는 마음으로, 가난한 벗들을 보듬는 보잘것없지만 따스한 손길로, 쓰러지고 아파하는 벗들을 위한 정성 가득한 기도로, 우리 모두 간절히 기다리던 아기 예수님께서 오늘 밝은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어둠을 즐기는 이들은 애써 빛이신 아기 예수님을 거부하지만, 우리는 온 마음과 몸으로 곱게 이 빛을 모셨습니다. 빛이신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어, 우리를 당신의 빛으로 만드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제대 앞에 차려진 작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구유, 온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심으로써 구세주를 낳으신 성모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마련한 성모상 주위를 수놓은 소박하고 은은한 작은 불빛들, 세상이 즐기는 휘황찬란하고 요란한 크리스마스와는 거리가 먼 고요함과 거룩함이 묻어나는 성당 전경, 이 모든 것을 아기 예수님은 세상 단 하나의 참 빛으로써 감싸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 빛이신 아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아기 예수님의 작은 빛이 되어 우리 본당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송산 성당 가족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곱게 모심에, 참 빛을 받아 세상 어둠을 밝히는 여리지만 귀한 빛이 되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본당을 밝혀주신 벗님들께서 이제 우리 본당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사는 고을에, 온 세상에 아기 예수님의 빛을 곱게 정성껏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이사야 예언자의 감격스러운 노래가 벗님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