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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오후 08:29

별osb 2015. 1. 1. 20:29

<새로운 우리가 되어 새해를 열어요>                                                                상지종신부님 복음묵상

2015. 01. 0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민수기 6,22-27 (사제의 축복)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갈라티아 4,4-7 (종살이에서 자유로)

형제 여러분,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루카 2,16-21 (목자들이 예수님을 뵙다, 할례와 작명)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새로운 우리가 되어 새해를 열어요>

초라한 마구간에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가 있습니다. 거칠고 냉혹한 세상의 검은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새하얀 아기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가축의 여물통 속 건초더미 위에 아기의 세상 첫 자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삶에 지쳐 쓰러진 부모의 숨죽인 한탄소리가 어색한 조화를 이루며 새벽어둠 속으로 퍼져갑니다. 가난한 시골 어느 구석 작은 마구간을 서둘러 찾아온, 가축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하느님 닮은 모습마저 빼앗기고 매서운 밤 추위와 온 몸으로 맞서야만 하는 목자들의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가 합쳐집니다.

기쁨과 희망 그리고 평화 가득하기를 바라는 새해 첫날은 이렇게 열렸습니다. 새해를 맞아 하루 사이에 기적적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분열과 다툼이 평화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던 2000년 전의 그날이 오늘도 그대로 이어지는 아픈 현실은 우리의 자그마한 꿈을 허락하지 않는 듯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날인 오늘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기쁨의 노래, 희망의 노래,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지독한 가난, 만삭의 몸마저 등 돌렸던 뭇사람들의 냉혹함에 무릎 꿇지 않고 가난하고 초라한 몰골의 목자들이 전해준 믿기 어려운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정성껏 마음에 새겼던 성모 마리아처럼, 쉽사리 바뀔 수 없는 고통스런 현실을 탓하지 않고 예수 아기,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의 가난함 안에서 오히려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실 희망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렸던 목자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뜻을 서로 나누고 곱게 담음으로써 고요하고 거룩한 평화를 이루었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목자들처럼 다시 한 걸음 내딛고 싶습니다.

아니 새해 첫 날인 오늘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기쁨, 희망,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고, 내딛어야 합니다. 기쁨, 희망, 평화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뜻밖의 손님이 아니라, 보잘것없고 가난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우리를 모든 것을 착하고 정의롭게 이루시는 하느님께 오롯이 맡김으로써 이루어야 할 고귀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탐욕과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의 슬픔을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기쁨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나눔의 삶을 산다면, 나로부터 시작한 미미한 아름다운 변화의 물결이 세상을 덮을 것입니다. 나 홀로 빼앗긴 이들의 남은 것마저 빼앗으려는 절망적인 세상을 억압과 차별 없는 살 맛 나는 희망으로 색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섬김의 삶을 산다면, 나는 언젠가 온 세상을 환히 밝힐 희망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나 홀로 서로를 향해 비난의 총부리를 겨누는 죽음 같은 분열의 사슬을 끊고 ‘너’와 ‘나’가 갈림 없이 하나 되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공감과 공존,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산다면, 나로부터 뻗쳐나간 평화의 끈은 하나 둘 벗들을 엮어 모든 이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새해 첫 날이지만,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오늘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여기, 물리적인 시공간은 우리 힘으로 크게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오늘의 우리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오늘 새해 첫 날, ‘어제의 우리’와는 완전히 달라진 ‘오늘의 우리’가 됩시다. 이기심과 탐욕의 종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하느님의 자녀가 됩시다. 우리에게 비춰주신 기쁨, 희망, 평화라는 하느님의 얼굴을, 우리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와 정의롭고 착한 몸짓을 통해 가족들로부터 이웃, 형제자매, 그리고 모든 이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나눕시다.

새해가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워진 우리가 한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올 한해가, 주님께서 선물하신 새해 첫 날을 함께 연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