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일 오후 03:28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상지종신부님복음묵상
2015. 01. 02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요한 1,19-28 (세례자 요한의 증언)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어제 새해 첫날을 기쁨과 평화로 가득 채우셨는지요. 새해 첫 마음이 매일의 삶 안에서 새 마음으로 피어나 올 한 해를 더욱 곱고 아름답게 가꾸시기를 바랍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더라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평가를 놓고 반응하는 태도는 다르기 십상입니다.
누군가로부터 과대평가를 받으면 조금은 쑥스럽지만 내심 좋아하면서 말할 것입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야.’ 라고. 그러면 상대방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쩜, 겸손하기도 하지.’ 라고. 이 정도가 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용기 있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를 바로 잡으려다 겸손한 이미지까지 덧붙여진 것을 즐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양상은 달라집니다. 인내심 있는 사람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언젠가는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 거야.’ 라며 넘어가겠지만, 성격이 좀 급한 사람이라면 ‘넌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 라고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지적할 것입니다. 심하면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고 완전히 갈라지기도 할 것이고요.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고유의 사명을 받았고,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때에, 사람은 비로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다른 이들로부터 주어진 인상이나 느낌, 평가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때로는 내팽개치고, 때로는 적당히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감추는 사람은 추하기 그지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대평가를 떨쳐내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엘리야나 다른 예언자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옹호하던 이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당신이 뭔데,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라는 비아냥거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 자신의 삶에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던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마음에 담고 벗님들과 함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작은 다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든 싫든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 생각, 평가를 들을 것입니다. 그 순간 있는 그대로 우리를 당당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라 해도, 이렇게 깎아내림으로써 우리 안의 주님은 커지실 것이고, 주님으로 우리 자신을 채우는 만큼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