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상지종신부님 복음묵상

별osb 2015. 5. 23. 17:07


요한 21,20-25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와 베드로, 엮은이의 맺음말)

그때에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때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가지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하나는 목적지를 다른 하나는 그 목적지를 향해 함께 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지요. 이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지를 놓고 경쟁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서로 협력하면서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을 향한 시선에 담긴 의미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갈 때, 자연스럽게 목적지이며 동시에 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과 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이 근본적이고 더욱 중요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함께 걷는 벗들을 향한 시선이 별 가치가 없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굳건하게 주님의 길을 걷는 믿음의 벗들을 봄으로써 선의의 자극을 받고, 나 역시 세상의 어떠한 권세와 유혹에 굴하지 않고 주님의 길을 걸어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음이 흔들리고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나라가 희미하게 다가올 때, 세상의 온갖 화려한 권세 앞에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의미하게 다가오거나 그리하여 주님의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나와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주님의 길에 충실한 벗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열심히 자신에게 맡겨진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벗들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이것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뀌어 벗들을 향한 시기와 질투의 시선으로 변질되면,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은 오히려 주님을 향한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은 주님을 향한 시선을 가로막지 않고, 때때로 뿌옇게 보이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이끄는 한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벗들을 보기 전에, 자신을 부르신 주님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고유한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길을 걷는 옆에 있는 벗들의 사명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내게 맡겨주신 고유한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믿음의 벗들은 말 그대로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벗들이며, 결코 주님을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벗들과 함께 걷도록 하신 까닭은 당신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께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힘과 용기를 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