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상지종신부님

별osb 2015. 6. 6. 13:39

2015년 6월 6일(연중 제9주간 토요일) No.109

마르코 12,38-44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부자들이
가진 것 가운데 자그마한 큰돈을 봉헌합니다.
초라한 모습의 가난한 과부가
가진 것 전부 동전 두 닢을 봉헌합니다.

꼿꼿하게 허리를 편 부자들은
더 드러내려 어깨에 힘을 줍니다.
쪼그린 가난한 과부는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입니다.

큰돈 내민 부자들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갑니다.
동전 넣는 가난한 과부의 손이
하염없이 부르르 떨립니다.

득의양양한 부자들은
헌금함을 바라보는 이들을 의식합니다.
고개 숙인 가난한 과부는
오로지 헌금함만을 바라봅니다.

큰돈 봉헌한 부자들은
여전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달랑 동전 두 닢 봉헌한 가난한 과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큰돈 봉헌한 부자들은
자신 안에서 당장의 삶을 즐깁니다.
동전 두 닢 봉헌한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삶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가난한 과부가 아니라 부자이기에
한 없이 부끄럽습니다.
조금씩 부자에서 가난한 과부로 넘어가자고
부족하나마 다짐해봅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침내 가난한 과부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예수께서는 지배계급의 지식인들을 비판하신다. 그들은 자기네 지식을, 백성 가운데서 가난한 계층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 대가로 부유하게 살기 위하여 사용한다. 상황을 자기네 좋을 대로 이끌어가는 힘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그런 착취를 기도나 다른 종교적인 동기를 내세워 감추면서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신다. 그런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스스로를 내세우고 애써 자랑하려든다. 성경지식과 종교를 이용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것을 빼앗는다. 종교를 앞세우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율법학자들이 과부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가산을 등쳐먹고 있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헌금 궤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집어넣는다. 예수께는 그 모습이 예루살렘에서 보신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인정 없는 부자들의 으스대는 꼴과 대조시키면서, 그 과부의 행위를 장엄하게("나는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칭찬하신다. 이렇게 봉헌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신다. 하느님을 믿는 사회 안에서 활기를 띠어야 할 경제관계는, 쓰고 남은 나머지를 동냥하듯이 던져 주는 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전까지를 포기하면서 자기 자신을 깡그리 내 주는 식의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