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5년 7월 20일(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별osb 2015. 7. 20. 17:54


마태오 12,38-42 (요나의 표징)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이 당신의 표징이라 말씀하십니다.

무엇인가 엄청난 표징을 기대하던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실망했고,
아무런 미련 없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적대자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예수님의 표징을 온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이로써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형도구가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상징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위에 가장 무기력한 모습으로
손과 발, 옆구리가 찢긴 채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수히 많은 기도를 바칩니다.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자신을 일치시키는 기도를 바칩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던 사람들처럼
권력을, 지위를, 재산을, 개인적인 욕구와 안락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핏빛 얼룩을 금빛으로 덧씌워
죽으심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고백 없이
스스로 만든 헛된 우상을 그리스도로 받들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무기력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죽으신 십자가 사건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역설입니다.
비록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만 부활하리라는
궁극적인 희망의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역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 안에서 실현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나약한 인간으로서
십자가를 변질시키려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유혹을
굳건한 믿음과 실천으로 이겨낼 때에
우리는 보잘것없는 미약한 사람이지만,
온 세상을 품을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여 당신 사명을 증명해 보이라는 요구를 거절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더불어 몸 바치고 싶지 않은 자들에 게는 그 어떤 기적도 신앙을 일깨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보여 주시는 유일한 증표는 당신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당신 사명이 온전히 참됨을 증거해 주고 확인해 주는 도장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적이 필요 없다. 오히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밖으로 보이는 기적을 보고 싶어 한다.
예수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의 마음과 인격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속 기적이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적은 그런 마음속 기적을 확인해 주는 증표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