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일(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루카 4,31-37(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루카 4,31-37(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려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귀의 영이 예수님께 울부짖습니다. 이 울부짖음은 두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영과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울부짖음은 결국 예수님의 영역과 마귀의 영의 영역은 다르고, 그저 각자의 영역에 머물러 각자의 일을 하자는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영의 교묘한 타협안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벗님들께서는 마귀의 영의 이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과연 나는 마귀의 영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2000년 전의 마귀의 영의 교묘한 술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암암리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과 ‘교회’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와 ‘세속의 삶’과 ‘신앙 실천’의 분리 안에 말입니다.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요?
요한 묵시록 21장 3절은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 세상과 단절된 채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 역사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며, 마침내 때가 이르러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몸소 사람이 되시어 인간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구원은 “의인들이 죽은 다음 얻는 새 생명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경제와 노동,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사회와 정치, 국제공동체, 문화와 민족 간의 관계와 같은 실재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도 현존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항).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흩어진 이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는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되었고 계속해서 모든 사람 가운데서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 구원의 봉사자인 교회는 추상적 차원이나 단지 영적 차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과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60항).
그러므로 “교회는 스스로를 가두거나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지 않고 인간에게 열려 있고,
인간에게 다가가며 인간을 지향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인간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역사적 환경 안에서 인간을 찾아 나서고 발견하는 착한 목자의 생생한 표상으로서 인간 가운데 존재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86항).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이 교회는 선택된 작은 그룹의 사람들만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작은 경당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집입니다.
우리는 보편교회의 품을 우리의 미지근함을 보호해주는 어떤 둥우리 정도로 축소시켜서는 안 됩니다”(「La Civilt Cattolica」대표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의 인터뷰, 2013, 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세상의 이분법적 구분은 비그리스도교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귀중한 구성원으로서, 아니 교회로서 믿음의 벗님들은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마치 거룩한 하느님의 영역과 세속의 영역이 구분되는 듯 주장하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느님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귀의 영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단호하게 이 마귀의 영을 물리침으로써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하느님의 권능을 선포하신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가파르나움은 예수께서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신 중심지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던 것은 백성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해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루카가 이야기하는 첫 번째 기적은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다.
마귀가 하는 중요한 일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백성을 속이는 이념, 거짓 선전, 잘못된 체제와 구조는 마귀의 대리자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백성을 억누르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 마귀의 대리자다.
예수께서는 그런 마귀들을 쫓아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존권과 존엄성 을 되찾을 능력을 되돌려주신다.
예수께서는 당신 말씀과 활동으로 사람들의 입과 귀를 열어 주신다. 사회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신다. 자기 판단대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 주신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이익과 권력과 패권만을 추구하는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과 나라들이 다른 수많은 힘없는 사람들과 나라들을 짓누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