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5년 10월 29일(연중 제30주간 목요일) / 상지종 신부님

별osb 2015. 10. 29. 11:46



루카 13,31-35 (죽음에 직면하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 가난한 이, 힘없는 이,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길, 이들과 함께 한다는 이유로 온 몸과 마음으로 품을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의 길, 그리고 마침내 처참한 죽음을 넘어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는 길, 바로 이 주님의 길을 오늘도 힘차게 걸어가실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믿음의 벗님들과 함께 새 아침을 시작합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때때로 포기하고 싶은 길로 부르시고 이끄시는 주님과, 혼자라면 결코 걸어갈 수 없는 주님의 길에 함께 함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는 믿음의 벗님들께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는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 유난히 가슴 먹먹하게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헤로데의 죽음의 덫이 놓여 있는 길을 피해 살 길을 찾으라는 바리사이 몇 사람의 충정어린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슬픔 가득 담긴 비장한 응답입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설사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과 정의가
아버지의 생명과 평화가
가득 넘쳐나야 할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그러나 지금은
불의한 정치와 종교 권력이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의와 착취와 지배가 행해지는
추악한 도성이 되어 버린 예루살렘

바로 그곳에서 내가 죽어야 하기에
내가 죽음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살려야 하기에
나는 계속 모든 이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죽이는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벗이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몸소 걸어가신 길을 마음에 새기며, 믿음의 벗님들과 우리가 함께 걷는 주님의 길에 대해서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탄생의 순간부터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의 삶은 하나의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인생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 사람이 처음 내었던
거칠고 투박하지만
삶 내음 가득한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뒤따라 걷기에
넓어지고 부드러워진
걸을 맛 나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걷는 이마다 쉬운 길 내려
제멋대로 덧씌운 샛길에 덮여
첫 모습 희미해진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여전히 따라나선 많은 이들이
온갖 탐욕 깃든 정성으로 가꿀수록
참 모습 감추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과 하나 되는 이
기쁘게 품에 안는
첫 모습 참 모습
결코 빼앗기지 않을
영원한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내시고 몸소 걸으셨던 길,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죽이는 참 생명의 길, 불의한 탐욕을 거스르는 섬김과 나눔의 길, 한 줌으로 사라질 부와 권력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지 않은 하느님의 뜻이 소박하게 담긴 영원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길을 내시고 걸으시며 이 길로 초대하신 주님이 계시고, 함께 걷는 믿음의 벗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이 길을 우리에게서 뺐지 못할 것입니다.

<의정부교구 교하성당 상지종 신부>


예수님의 활동은 당국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준다. 그들은 반발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 사명을 수행하신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유를 얻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죽음에 다다른다.
우리가 사랑과 정의가 다스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하면 경제,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가 뒤흔들린다. 사람들과 사회의 가치관이 뿌리째 뒤바뀐다. 사회불의에 기대어 특권을 누리던 자들이 불안에 떨게 된다. 인정 없는 부자들과 불의한 권력자들이 위험을 느낀다. 그래서 갈릴래아를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님을 죽이려 든다. 종교지도자 들도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다.
예루살렘은 정의가 실현되는 자리, 생명을 노래하는 축제의 자리가 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은 불의한 권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불의와 착취와 지배를 일삼는 중심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죽이는 곳으로 변했다. 예루살렘은 자기가 속속들이 썩었음을 인정한 다음, 서로 사랑하고 나누면서 살아가도록 자유를 안겨 주실 예수님의 계획에 자신을 열어 놓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