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6년 3월 21일(성주간 월요일) / 상지종신부님

별osb 2016. 3. 21. 12:22



 요한 12,1-1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성주간 월요일입니다. 우리는 성주간 동안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에 함께 합니다. 우리는 성주간 동안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죽음에 함께 하기 위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럽고 참담한 여정이 마침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지리라 믿고 희망하기에 기꺼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엿새 전, 곧 당신 공생활의 마지막 한 주간의 첫날에, 당신께서 다시 살리신 라자로가 살고 있는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이미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던 예수님께 이 한 주간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요? 특별히 이 한 주간의 첫날이 예수님께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생의 마지막 한 주간 첫날에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이 잔치,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예수님을 위한 잔치랍니다. 이제 곧 곁을 떠날 이를 위한 잔치랍니다. 죽음,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스러운 죽음, 온갖 악의와 적의가 난무하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를 위한 잔치랍니다. 모든 이를 살리고 온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한 죽임을 당하러,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만 할 이를 위한 잔치랍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잔치입니까? 이제 곧 죽을,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릴 이를 위한 마지막 자리가 어떻게 잔치일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닥칠 끔찍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듭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마리아, 슬픔에 흐느끼며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지막 사랑, 자신을 송두리째 부어드립니다. 대신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오히려 기쁘게 가련마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이 한스러워, 죄 없이 죽음의 길을 가시는 주님이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 억누를 수 없기에, 행여 눈물 보여 주님의 마음 아프실까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하지만 정성스레 주님의 발을 닦습니다.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랑과 걷잡을 수 없는 슬픔 가득 머금은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곱게 주님의 발을 닦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읊조립니다. ‘주님 기어이 떠나시렵니까? 주님 기어이 가셔야합니까? 당신이 왜 가셔야만 합니까? 당신이 왜 죽어야만 합니까? 당신이 왜 십자가 매달려야 합니까?’

그러나 주님과 동고동락했던 한 제자는, 돈주머니를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던 한 제자는 비웃습니다. 가난한 이를 핑계 삼아 질책합니다. 주님을 팔아넘길 바로 그 제자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한 한 제자의 모습입니다.

마리아와 유다, 이미 시작된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그분만의 길이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우리 역시 함께 해야 할 길인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까? 유다의 질책과 비웃음, 마리아의 눈물과 향유,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생의 마지막 한 주간에 함께 하고픈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 마리아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십자가의 길을 떠나시는 주님께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려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땅 속 깊숙한 곳에서 남모르게 썩어 가는 밀알의 삶이라는 향유를, 벗들을 위해 기쁘게 목숨을 바치는 아름다운 사랑의 삶이라는 향유를, 벗들을 살리기 위해 나를 밥으로 내어놓는 성찬의 삶이라는 향유를, 몸소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따라 온갖 위선과 가식의 껍데기를 허물어버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른 이들의 받침대가 되는 육화의 삶이라는 향유를 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길에 함께 하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이번 성주간 모든 이와 온 세상을 살리시기 위하여 죽음의 길을 떠나시는 주님께 벗님들의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림으로써 가슴 벅찬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의정부교구 교하본당 상지종 신부>


마리아의 행동은 죽게 될 예수님의 몸을 단장하는 일이다. 죽음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생명을 바치실 마지막 행위가 될 것이다.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행동은 쓸데없는 낭비인가?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해 주는 체하면서 자기 자신의 인색함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는 유별나게 가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늘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형제애를 기울이는 열린 공동체가 될 것이었다.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동체를 상징한다. 이들은 형제 자매로서 사랑 받던 제자의 공동체가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것, 즉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의 관계를 낳는 사랑을 실천한다. 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는 마음과 생명을 함께 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 식사에 현존하여 계신다. 세 형제자매는 각기 제자다움의 한 면을 상징한다. 라자로는 예수님과 친하게 지내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증거를 통하여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하는 제자다움을 상징한다. 마르타는 공동체 안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모든 여성 사목자를 상징한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당신 목숨을 바치는 신랑이신 예수께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랑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사랑에 겨워 당신 목숨을 바치는 분으로 인정을 받고 싶으시다. 당신은 아버지께로 돌아가 실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주는 분으로 영원히 가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 남아 계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할 때 그들 가운데 계시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3월 26일 성주간 토요일 <가톨릭행동> 회원 미사는 한 주 쉽니다.



3월 26일은 성토요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부활 전야미사를 위해
<가톨릭행동> 회원미사는 한 주 쉽니다.
혜화동 "백남기 임마누엘 회장님" 농상장에서
성삼일 전례가 있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관상과 활동> 영성학교 2016년 봄 강좌 시작합니다.



이번 강좌의 주제는 "사회적 영성을 찾아서 입니다.
4월 2일 토요일 첫강좌를 시작으로 6주간의 강좌와
1박 2일의 피정으로 진행됩니다

본 강좌는 '자발적 후원'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단, 피정 숙박비는 개인이 부담하셔아 합니다.

강좌 신청은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광화문 미사 일정을 알려드립니다.



-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_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주관 시국미사
-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7시 30분 _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광화문 미사

※ 백남기 임마누엘 회장님 쾌유를 비는 미사는 매일 오후 4시
서울대학교 병원 앞에서 봉헌됩니다.




가톨릭행동 회원 가입



http://catholicaction.kr 에서 온라인으로 회원 가입이 가능합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