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4일(부활 제5주일) / 상지종신부님
요한 13,31-33ㄱ.34-35 (새 계명)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다가 제 갈 길을 떠난 후
예수님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배신과 부인
인신모독과 채찍질이 난무하는
죽음의 순간보다 더 고통스런 치욕이
온 몸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벌거벗긴 채 들어 올려지고
마침내 다시 살아 아버지와 하나 될
당신의 영광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십자가의 치욕이 부활의 영광으로
거룩히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벗을 살리기 위해 당신 목숨 봉헌하는
십자가의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당신의 영광은 시작되었다고.
사랑하는 외아들의 처참한 죽음의 길을
그저 바라보시는 성부께서는
외아들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무능한 하느님으로서
수치를 당하지 않고
사랑, 생명, 평화, 정의 넘치는 세상을 위해
죽임의 세상을 살림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외아들의 참혹한 죽음마저 허락하시는
참으로 전능하신 하느님으로서
드디어 영광스럽게 되셨다고.
제 목숨 살리려 벗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치욕스럽고 추악한 삶의 모습이
부와 명예로 가득한 영광으로 도색된 시대
쓰러진 벗들을 보듬어 함께 살려는
오직 예수님처럼 사랑함으로써
사랑이신 예수님을 지금여기에 드러내며
예수님의 제자임을 당당하게 밝히려는
빛의 자녀들이 모욕 받고 짓밟히는 시대
인간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 사이에서
갈등하는 선의의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나서시는 예수님께서
가슴 미어지는 애틋한 마음으로
간절함 머금은 메인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물러서지 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에 대한 나의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의정부교구 교하본당 상지종 신부>
새로운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을 뛰어넘는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인간을 사랑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은 인간 안에 현존하시고, 그런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은 공동체를 낳는다.
온갖 모양의 억압과 죽임 앞에서 인간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며 살아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공동체를 낳는다.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이루는 운동에 목숨을 거는 일이다.
예수께서 실천하신 대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증거로 자기 목숨을 내거는 일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한 혈육과 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여 함께 살라는 것이 예수님의 유언이다.
당신이 생명을 바쳐 사람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목숨을 걸고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당신 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