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스크랩]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2014. 12. 18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상지종신부님 복음묵상

별osb 2014. 12. 18. 15:27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2014. 12. 18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마태오 1,18-24(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고 태어나실 아기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임마누엘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임마누엘이시다.’라는 고백은 곧 ‘구원의 하느님께서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느님의 구원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편에서 보자면 ‘임마누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니 너희도 나와 함께 있어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짧은 이름 안에는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우리’, ‘함께’가 그것입니다. 만약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져 버린다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그 가치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혼자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방법과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임마누엘’이신 당신을 드러내는 최고의 결정적인 방법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높고 거룩한 자리를 떠나, 보잘것없는 척박한 곳에 보금자리를 삼으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을 완전히 이루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시는 하느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임마누엘’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하느님과 ‘따로’를 추구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고 ‘임마누엘’은 의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임마누엘’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어쩌면, 처녀로서 아기를 낳으리라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던 마리아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느님께서는. 같이 살기 전 성령으로 말미암은 약혼녀의 잉태로 고뇌에 빠진 요셉이 천사의 명령대로 아내를 맞이하기까지 마음 졸이셨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임마누엘’을 강요할 수 없는 무기력한 분이신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임마누엘’은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의지의 표명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초대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어둠의 세상 한 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주님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지 않니? 그러니 제발 나를 떠나지 마려무나. 너희와 함께 하고픈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제발 외면하지 마려무나.’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이제는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버려야할 차례입니다. 불신, 이기심, 질투, 탐욕, 돈과 권력을 향한 우상숭배, 하느님과 우리를 갈라놓았던,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모든 헛된 것들을 벗어야 합니다. 2000년 전 마리아와 요셉이 하느님과 함께 이 땅 위에서 ‘임마누엘’을 이루었듯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임마누엘’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바로 우리 사람이 되어 오십니다. 이제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비록 우리가 하느님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닮아야합니다. 가장 낮은 이로 오시는 주님의 겸손을, 죽음조차 막을 수 없었던 주님의 사랑을, 고통 받는 이에게 넘쳐났던 주님의 희망을, 살 맛 나는 세상을 일구었던 주님의 기쁨을, 이제 바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시간,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변화로 삶을 채우며, 주님께 힘차게 달려가는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출처 : 안산 와동 일치의 모후 성당
글쓴이 : 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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