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18

대림 제3주간 월요일 /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다해 대림 제3주간 월요일 – 당신이 세례자 요한을 대하는 방식 그대로 예수님도 당신을 대하신다 오늘 복음도 세례자 요한에 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관한 논쟁입니다. 먼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는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상하게 세례자 요한의 권위를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이 만약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그러면 왜 그가 증언한 나를 믿지 않느냐?”라고 할..

복음묵상 2021.12.12

대림 제 1주간 목요일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다해 대림 제1주간 목요일 – 배움의 가장 큰 적: 자기 수준을 모르는 것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신 다음 결론적으로 ‘실천’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라고 하십니다. 배움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알게 된 게 아닙니다. 나의 앎은 곧 나의 삶입니다. 실천 없는 배움은 곧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수준은 정확히 내가 실천하는 것만큼만입니다. 우리는 실천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천 없이 자꾸 더 배우려 합니다. 이것이 진전을 방해합니다. 기둥만 세우다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묵상 2021.12.01

대림 제 1주간 수요일 /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다해 대림 제1주간 수요일 – 도전을 멈출 때 사랑도 멈춘다 오늘 복음은 ‘4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이 이뤄진 곳은 갈릴레아 부근 산입니다. 산이기는 하지만 ‘광야’로 표현된 것을 보니 척박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흘’ 동안이나 집에 가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갈릴레아 부근이라면 사실 조금만 가면 동네가 나오는 곳이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와 어떻게 이리 광야에서 머물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진리를 깨우쳐주시고 심지어 배고픔까지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본인들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래야 주님과 오래 머물 수 있고 기적을 ..

복음묵상 2021.11.30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다해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 우연은 무책임과 우울함을, 필연은 책임과 기쁨을.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부였던 네 명의 사도들을 뽑으시는 내용입니다. 그중에 안드레아가 있습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첫 제자였습니다. 처음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그를 따라가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라고 시작합니다. 얼핏 보면 예수님께서 ‘우연히’ 거니시다가 그들을 발견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은 아무 생..

복음묵상 2021.11.29

대림 제 1주간 월요일

2021년 다해 대림 제1주간 월요일 – 하느님에 대해 묵상한다고 다 믿음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이 나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중풍에 걸린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시자, 그는 굳이 오시지 않아도 한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도 아랫사람에게 시키면 그들이 알아서 하는 것처럼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시다면 분명 그분의 종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묵상으로 얻어진 믿음이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우리도 마지막 때에 주님께 참 믿음으로 살고 왔다는 칭찬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백인대장..

복음묵상 2021.11.29

다해 대림 제 1주일 /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다해 대림 제1주일 – 기도는 왜 해야 하는가? 오늘부터는 전례력으로 ‘다해’가 시작되고 오늘은 그 첫 주일입니다. 한 해의 시작.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내용이 같습니다.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이 시작입니다. 태아가 태중에서의 마지막이 바깥세상에서의 첫날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대비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 앞에 설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앞에 설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그 사람의 뜻을 따라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뜻..

복음묵상 2021.11.27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나해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 심판 때 그리스도 앞에 설 힘은 기도로 얻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 오늘 복음에서 종말의 긴 말씀 가운데 마지막 당부가 나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 대부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 앞에 설 힘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힘은 곧 그분의 뜻을 따랐느냐에 의해 생겨납니다. 중동에 나가 일을 하여 남편들이 돈을 보내줄 때 아내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아껴 쓰면서 자녀를 잘 키워 몇 년 만에 남편이 돌아올 때 기쁘게 김포공항에 나가는가 하면, 어떤 자매들은 남편이 돌아올 때 도망을 치거나 자살을 했습니다. 그 돈을 제비에게 ..

복음묵상 2021.11.26

연중 제 34주간 금요일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나해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마지막 시대에 해답은 유대인이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는 갑작스럽게 오지 않고 ‘순차적’으로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전체적으로 잎이 생기기 시작하면 “곧 겨울이 오겠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봄이 왔고 여름이 오리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도 눈만 감고 있지 않으면 다 알 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때의 가장 확실한 표는 이스라엘의 재건입니다. 2천 년 이상 나라가 없이 떠돌다가 다시 나라가 재건되는 경우는 역사에 없습니다. 인원이 많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1,300만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1/3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19..

복음묵상 2021.11.25

연중 제 34주간 목요일 /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나해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 희망 없는 사면초가 상황에서 영웅이 되려 하지 마라. 오늘도 예수님은 ‘종말’의 상황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우리는 나라를 위해 끝까지 항쟁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까요? 만약 살 방법을 모색하다가는 나중에 나라의 큰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적군에게 포위된 상황’, 곧 ‘사면초가’에 ..

복음묵상 2021.11.24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 전삼용 신부님

2021년 나해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 죽음과 가까울 때 성령께서 충만히 오시는 이유: 명의는 작은 병에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 복음은 세상 종말이 언제 올 것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죽음을 현재화하여 자신을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사는 것이 나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면 어차피 죽기 때문에 조금 더 생존하기 위해 세상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 안에 생존을 위한 세속적인 것들이 아니라 ‘사랑’을 채우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죽음을 현재화하여(Meme..

복음묵상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