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2014년 12월 26일 오후 09:49

별osb 2014. 12. 26. 21:49


강우일(70) 천주교제주교구 주교(감목)가 올 한해를 마감하는 성탄 전야를 맞아 24일 [제주의소리]를 통해 강정주민들에게 지상 연하장을 보내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송년기획-지상연하장](1) 강우일 주교가 강정마을에 띄우는 연하장


또 한해가 저무는 연말이다. 왠지 마음 따뜻한 추억들이 그리워진다. 제 발로 아랫목 찾아들던 볼 시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도 싶어진다.


해마다 이맘 세밑이면 대문 우체통에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이 심심치 않게 날아들던 시절이 있었다. 육필로 써내려 간 그것들을 누군가에겐 구닥다리일지 모르지만 단 한 장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시절이 바뀌었다. 느리고 불편한 육필 연하장 대신에 쏜살보다 빠르고 편리한 것들이 연하장 자릴 꿰차고 있다. 온라인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같은 인터넷·모바일 소통수단들이 호주머니 속으로 시공을 가로지르는 시절이 됐다.


[제주의소리]가 ‘갑오년(甲午年)’을 마감하고 ‘을미년(乙未年)’ 시작하며 ‘지상연하장’이란 송년기획을 세 차례 마련했다.


잔뜩 움츠린 겨울하늘 구름을 걷어내고 툇마루 한쪽에 쏟아지는 햇볕 아래 앉아 육필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읽으며 행복해하던 그 시절을 모처럼 떠올리며 따뜻한 연말연시가 되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담았다.


첫 지상연하장을 보내온 것은 강우일(70) 천주교제주교구 주교다. 성탄전야에 강정주민들에게 전한다며 [제주의소리]에 보내온 연하장이다.


숱한 상처와 아픔을 안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강 주교의 진심을 이미 잘 안다. 종교 지도자이기 전에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정마을의 평화를 바라는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육필 연하장이다.

강우일 주교가 보내온 육필 연하장.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강 주교의 진심이 한 자 한 자에 녹아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강정마을 주민 여러분께 만복을 기원합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산수가 수려하고 인심이 풍성하여 일강정이라고 자랑하던 마을공동체가 지난 몇 해 동안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과 갈등과 긴장으로 점철된 힘든 나날을 보내오셨습니까?


이제 밝아오는 새해에는 지난 세월의 많은 상처와 울분과 대립을 넘어서 한 형제자매로 좀 더 밝은 희망과 위로와 우애가 넘치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시고 집안 두루 화목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강정에 平和!
강정에 平和!
강정에 平和!


2014년 성탄절에,
천주교 제주 감목 강우일 드림.




첫째도 강정 평화, 둘째도 강정 평화, 셋째도 강정 평화를 바랐다. 강 주교의 '울분과 대립을 넘어서서 한 형제자매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자'는 당부가 귓전을 때린다.


강 주교는 교구 신부를 통해서도 정부와 국방부,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도 당부를 전해왔다.


어느 날 날벼락처럼 찾아온 해군기지 강행으로 마을공동체가 산산 조각난 강정주민들의 아픔을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으로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노력을.


원희룡 제주도정이 제시한 진상조사위 구성을 강정 주민들이 받아들였으니 그 깊은 생채기와 갈등을 씻어주기 위한 종전과는 달라진 정부와 제주도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충언했다.

지난 8년여의 피눈물 나는 강정주민들의 희생과 고통. 그것으로 끝나면 이야 덧없는 노을, 바람보다 가벼운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허무할 뿐.


강정을 통해 생명에 대한 경각심, 평화에 대한 재발견. 강정마을은 더 이상 제주 섬 끝자락 한 귀퉁이 작은 마을이 아니란다.


전 세계인들에게 생명평화의 정신을 일깨운, 더 이상 제주만의 강정마을이 아니란다.


결국 해군기지가 강행되고 기지가 들어설 수밖에 없더라도 이로 인한 강정마을의 갈등을 풀어낼 수 있도록 온 도민이 끝까지 마음을 모아주길 당부했다.


툇마루에 앉아 한해를 갈무리할 수 있다면 강정을 한 번 더 떠올려보라. 그들, 강정 주민들을 위해 사람냄새 나는 편지 한 장이나 연하장을 육필로 보낼 수 있다면 더 행복한 갑오년 끝자락이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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