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님에게서 구세주를 볼 수 있기를> 상지종신부님 복음묵상
2014. 12. 30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2,36-40 (한나의 예언, 예수님의 유년 시절)
그때에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아기 예수님에게서 구세주를 볼 수 있기를>
아기 예수님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계시는 믿음의 벗님들께서는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세상의 근심 걱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밝은 웃음을 지었던 날이 있었을 것입니다. 잠시 그 날, 그 웃음, 그 아이를 떠올려보십시오. 새삼 입가에 자그마한 웃음이 그려지면서 행복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의 일이든 오래전 일이든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바라보던 그 순간만큼은 아마도 우리 자신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온통 아이만으로 채웠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가장 행복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이처럼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예언자 한나를 만납니다. 이미 늙어 공동체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남편마저 없는 여자로서 달갑지 않은 뭇시선을 감내해야 했기에 이중 삼중의 가난으로 고통스러워했을 한나는, 하지만 아기 예수님께서 구세주임을 알아보고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던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한나는 자신의 행복에 머물지 않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기꺼이 나눕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아기 예수님은 성전에 봉헌된 다른 아기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기에, 평범한 아기 예수님에게서 구세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아기가 구세주라는 것을 볼 수 있었기에, 구원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나처럼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아기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오늘 미사 독서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듯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1요한 2,16)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욕망은 이기적 욕심에서 나오고, 살림살이에 대한 자랑은 가난한 형제들에 대한 무시와 거부를 동반합니다. 따라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할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한 채 자기 자신 안에만 갇혀 있도록 강요하는 것들이요, 더 나아가 하느님조차 배척하라 부추기는 것들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언자 한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고, 자신의 삶을 오직 하느님으로 채웠습니다. 한나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며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이처럼 한나에게 가난은 삶의 족쇄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하느님께 매달릴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 깊은 좌절감에 자포자기를 하기도 하고,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보다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의지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삶을 좀 더 안락하고 풍요롭게 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단 한 분이신 구세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하느님 사랑에 힘입은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께서 탐욕과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의 것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 비우는 만큼 채워주시고 베푸는 만큼 안겨주시는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리기 그지없는 아기 예수님에게서 온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실 구세주를 바라보고, 무쇠같이 단단한 거친 세상을 예수님과 함께 연약하고 작은 몸짓으로 서서히 변화시키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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