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
이기헌 주교님 모시고 사제연수회에서 <주님에 대한 사랑은 벗에 대한 사랑이다>라는 주제로 강의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강의 서두에 주교님께서 "오늘 강의가 어떤 신부님들께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런 소리도 잘 들어야 성장한다"고 말씀하셨고,
점심 먹고 주교님과 환담도 나누었어요. 참 대단한 분입니다. 주교님은 한겨레 경행을 비롯해 신문 3종을 항상 꼼꼼 읽으며 배우신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신문도 보는데 읽다보면 영 싱거워서 안 보게 된다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말을 하다 마는 것같은 신문이라는 거죠.
의정부 교구 신부님들은 참 축복받은 분들이란 생각 잠시 합니다.
오늘 한 강의 첫 부분만 여기 올려봅니다.
그분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지만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려와야 했다네.
조희선 시인의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도서출판 꽃잠, 2015)에 실린 ‘삭캐오’라는 시다.
가톨릭신자가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수도자와 성직자가 되려고 작심할 때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한 갈증’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무들처럼 천상을 향해 손을 뻗치고 올라가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복음서가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정작 그분의 정체를 발견하고서는 다시 산을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 마을에서 그분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분은 구름 속에도, 천둥번개 속에도 계시지 않는다.
성당의 높은 첨탑에 갇혀 계시지도 않고, 제대 위에만 앉아 계시지도 않는다.
그분은 미풍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도 계시고,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의 냄비를 걸고 계신다.
그분이 밥 짓는 냄새를 맡고, 그분이 떠주는 밥을 얻어먹어야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거친 이승’을 동반할 수 있다.
엠마오를 지나던 제자들처럼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그분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사제들은 양들의 냄새뿐 아니라 양들을 통해 드러나는 그분의 냄새도 알아차릴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주제는 ‘사제들의 권위주의’에 관한 것일 테지만,
이 진부한 주제를 다시 다룬다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
사제들의 권위주의는 갑작스레 나타난 것도 아니고, 가톨릭교회의 콘스탄틴 전환 이후 권력화 된 교회 안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유령 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은수생활과 수도전통이 발생하고, 아시시 프란치스코 같은 탁발 수도회도 출현했다.
그렇지만, 권위적인 교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제들 개인에게 ‘권위주의 청산’을 주문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비상한 결단을 통해 구조를 뒤바꿈으로써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괜스레 사제들에게 ‘죄책감’과 자책의 빌미를 던져주는 것은 오히려 사제생활을 위축시키고 불편하게 만들 위험조차 있다.
오히려 다른 주문을 사제들에게 하고 싶다
. 실상 사제들의 권위주의는 ‘복음적 열정의 상실’에서 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방문지였던 이탈리아 남단의 항구 람페두사에서 죽어가는 난민들을 바라보며 “누가 이들을 위해 울어줄 것인가?” 물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세계화’를 한탄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복음적 열정에 대한 무관심의 교회화”를 한탄해야 한다.
복음은 사제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동료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다’고 말한 분에 관해 전하고 있다.
그분은 공생활 벽두에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 선포된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각성을 자기 몫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주교와 사제들에게 ‘신앙없음’과 맡겨진 백성들에 대한 ‘직무유기’를 따져 물을 수 있다.
결국 성직자 권위주의의 문제는 ‘복음’에 대한 민감성의 문제다.
이 문제를 적절히 깨우쳐 준 사람이 교황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사실상 교회권위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람이 ‘바닥의 마음’으로 복음을 다시 일깨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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