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5년 8월 19일(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상지종신부님

별osb 2015. 8. 19. 15:34



마태오 20,1-16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
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 아침 9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일꾼을 부릅니다.

 날이 저물어 하루 일한 품삯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대충 이 시간을 오후 6시 정도라고 생각해봅시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일한 시간을 따져보면 오후 3시에 온 사람은 세 데나리온을 받아야 하고, 아침 9시 온 사람은 아홉 데나리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 대충 오전 8시쯤이라고 하면, 이 시간에 온 사람은 열 데나리온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람들의 공정한 계산 방식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제 정의입니다. 사람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인간들의 물질적인 경제 정의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이러한 정의조차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일꾼들은 자신의 정당한 주장, 적어도 인간의 정의로는 타당한 주장을 포도밭 주인에게 합니다. 이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밭 주인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보면, 이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포도밭 주인은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한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주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일한 시간만큼만 계산하면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살펴 본 계산을 역으로 하면 되죠.

 아침 아홉시에 온 사람에게는 10분의 9 데나리온을, 오후 3시에 온 사람에게는 10분의 3데나리온을,

그리고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는 10분의 1 데나리온을 주면 되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주었다면 일찍부터 나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으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포도밭 주인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자신과 가정을 꾸려가야 할 일꾼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종일 초조한 마음을 졸이며 막막한 생계를 걱정했을 오후 5시에 온 일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싶었던 것이

 포도밭 주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산 방식이고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봄으로써만 가능한 생명력 있는 삶의 경제 정의이지요.

사람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상황을 이 것 저 것 조목조목 따져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도 오늘 포도밭 일꾼들이 일한 시간을 따져서 거기에 맞게 품삯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바로 온전한 한 사람 자체이고,

이 사람의 삶입니다.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이 일한 시간을 따지지 않고 하루 생활할 수 있는 품삯, 즉 한 데나리온을 모두에게 나누어 준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후 5시에 불려온 일꾼이라면 주인에게 항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자비로움에 감사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른 아침에 불려온 일꾼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주인의 처사가 못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처사가 몰상식한 것이라고 불평하겠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돕기 위한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우리의 삶은 곧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불릴 수도 있고, 나중에 불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 것이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품삯을 치러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그리고 주님께서 치러주실 삶의 열매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불러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품삯을 치러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하느님 나라에서는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 없다. 인간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모든 기준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선함과 자비로우심에 참여할 똑같은 권리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버지께서 공으로 주시는 선물임을 모르는 사람이다.
불평등한 경쟁을 일삼는 자들은 시기, 질투, 모함, 아귀다툼에서 벗어 날 길이 없다. 온 인류에게 평등한 자유와 생명을 가져다 줄 참된 정의는 불의한 사회가 내세우는 거짓된 정의와 다르다. 하느님의 정의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정의로서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그런 차가운 정의를 훨씬 뛰어 넘는다.
구약시대에 포도원은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했다. 신약시대에서도 포도원은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즉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몸 바치는 백성을 상징한다.
참되고 값있는 노동은, 온 인류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사회와 세계를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 데 몸 바치는 노동이다.

 그런 뜻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갖 수고와 노동이다. 하느님의 백성과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는 데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

 그러나 뒤틀린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보람 있는 노동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이 부른 일꾼들에게 똑같은 품삯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기회를 어떤 사람은 일찍 얻고 또 어떤 사람은 늦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빠르든 늦든 모든 사람이 당신 일꾼이 되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당신 나라를 위하여 일한 대가는 당신이 알아서 주신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첫째도 없고 꼴찌도 없이 모두 평등하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 라를 위해서 더 먼저 더 오래 일했다고 해서 더 많은 상을 받고 더 늦게, 더 짧게 일했다고 해서 더 적은 상을 받으라는 법은 없다.

하느님은 아무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모든 사람을 한결 같이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계산하는 정의’는 없다.

 하느님은 계산 없이 거저 당신 사랑과 선물을 베푸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