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희망의 전달자> / 2015. 12. 19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상지종신부님

별osb 2015. 12. 19. 08:49



 

루카 1,5-25(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2015. 12. 19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희망의 전달자>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며 잔잔한 기쁨과 평화에 젖어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리가,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노동자들의 한숨소리가,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묻은 세월호 가족들의 애끓는 외침이,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으로 차디찬 길바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순박한 농민의 거친 숨소리가, 차디찬 쪽방의 독거노인들의 신음소리가, 삶의 터전을 빼앗긴 가난한 이웃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결손가정에서 굶주린 아이들의 배곯는 소리가 절망적으로 들려옵니다.

그렇지만 희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에,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고, 바로 그 희망의 씨앗을 절망으로 얼어붙은 땅에 뿌려야 합니다. 하지만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을 뛰어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희망과 절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희망은 하느님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결단입니다.

희망의 문턱에 선 우리는 ‘두려움’과 ‘의심’ 때문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나약함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이 두려움과 의심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희망, 즉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기에, 희망의 전달자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희망이 절실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웃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을 갖지 못한 사람은 희망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구세주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오시리라는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희망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켜야 할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곧 이웃에게 희망이 되어주어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올해 성탄에 믿음의 벗님들께서 힘들고 지친 이웃에게 희망의 전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