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5년 2월 18일 오후 11:38

별osb 2015. 2. 18. 23:39

상지종신부님 복음 묵상

 

<기쁘고 겸손하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요>

2015. 02. 19 설

민수기 6,22-27 (사제의 축복)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야고보 4,13-15 (자만하지 마라)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루카 12,35-40 (깨어 있어라)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기쁘고 겸손하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요>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은 특별한 만남이 있는 날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끔 하느님과 함께 이끌어주신 조상님들과 위령 미사와 차례를 통해 만납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과 살아있는 이들이 만나는 것이지요. 아랫사람이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덕담을 듣습니다. 지금까지 가정과 사회를 돌보고 우리를 길러주신 어른 세대와 앞으로 가정과 사회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가 만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열 일 제쳐두고 만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충실했던 삶의 결실을 다른 여러 가지 선물꾸러미와 함께 가족들과 나누게 됩니다.

또한 새해 첫날을 만납니다. 새로운 한해를 만나는 것이지요.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허물로 누벼놓은 낡은 한해를 가져가시고, 새롭게 삶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백지와 같은 한 해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하루하루의 삶을 그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 설날이지만, 분명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단지 우리의 느낌만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참으로 새로운 마음, 기쁜 마음,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이 한해를 진정 새로운 한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깨어 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어제와 다른 새로운 오늘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깨어 있음” 아닐까요?

혼인 잔치에 돌아오는 주인을 맞아들이는 종들은 주인이 가지고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한 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정녕 새로운 한 해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한 해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겸손”이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니, 또 한 해를 맞는구나, 이 한해는 어차피 내 시간이니 내 마음대로 풀어나가야지.” 라는 교만한 마음은 주님의 선물인 새해를 맞이하는 신앙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작년, 재작년도 아니고, 내년, 내후년도 아닌 올해는 인생에 있어서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특별한 한 해를 “주님께서 원하시면 내가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일을 기쁘게 열정적으로 해야지.”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겸손함이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살길만을 찾기에 서로가 경쟁 상대이기 쉬운 안타까운 현실에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라고 축복해 주고, 이 축복을 삶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이 곧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설을 참 올바른 자세로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주세요.” 라고 인사하지 않고 말이지요. “새해 복 많이 주세요.”라는 인사가 무엇인가를 더 가지겠다는 뜻이라면,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내 것을 나누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단지 입으로 하는 겉치레의 인사가 아니라,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당신에게 복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다짐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다짐이 조금은 무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입으로만 착한 일하고 입으로만 복을 빌어줄 뿐, 실제로는 자신의 것만 챙기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눈을 돌려 힘겹게 살아가는 벗들을 보기보다, 내 자리, 내 지위, 내 재물, 내 권력에 안쓰럽게 매달리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새해에는 복을 빼앗기지 맙시다.”라는 제목의 한 노동조합의 대자보를 보면서 씁쓸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새해 인사까지 나오게 됐는지 안타깝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었죠. 제발 이런 말도 안 되는 새해 인사가 오고가는 슬픈 세상이 빨리 사라져버리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몰아내고, 진정 하느님의 축복이 넘치는 평화의 세상을 일구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새해를 맞는 우리의 다짐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들! 진정 주님의 은총을 다른 이들과 넉넉히 나누는 아름다운 한 해를 정성껏 보듬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