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상지종신부님

별osb 2015. 6. 22. 21:05

마태오 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왜 남의 죄를 고백합니까?”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와 고통들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고선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으로서 용서를 했어야 하는데 마음으로 미워했습니다.’ 라고 자신의 죄(커다란 죄의식 없이)를 덧붙이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인지, 다른 사람의 커다란 잘못으로 자신의 보잘것없는 잘못을 덮으려하는 것인지,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을 만나면 안타깝고 심지어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에 빗대서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솔직히 시인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의 도움 없이(물론 하느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죄의 사슬을 끊고 다시금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의 원인을 끊임없이 다른 이들에게서 찾으려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죄를 덧씌운 그 누군가를 변화시켜야만 하는 불가능한 과업에 치여 허덕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해서 나의 아무런 노력 없이 내가 덩달아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깨끗해지려면,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내가 깨끗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깨끗이 함으로써 나도 깨끗해지고자 하는 것은 헛된 꿈일 뿐입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하느님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은 사뭇 다르다. 하느님의 판단 기준은 흔히 인간의 판단 기준과 같지 않다. 이웃을 가혹하게 판단하는 (티) 사람은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고 더없이 약하다는 사실(들보)을 모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느님만이 온전한 가치평가를 하 실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께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제멋대로 평가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결코 자기 자신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못한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과거와 현재의 사물과 사람의 옳고 그름을 가려 내는 일은 중요하지만, 구원을 가름 하는 결정적인 가치 판단과 평가는 하느님께 맡기는 편이 온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