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2015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상지종신부님

별osb 2015. 6. 21. 10:11


2015년 6월 21일(연중 제12주일(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마르코 4,35-41(도대체 이분는 누구신가?)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직녀에게> 문병란 시 (1976년 발표)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남북분단 30주년을 즈음하여 시인은 넋 놓고 하나 되는 날을 기다리기보다 칼날 위를 걷는 참혹한 고통마저 감수하며 달려가 남북이 만나자고 애끓는 심정으로 노래하였습니다. 그 후 40년이 지나 올해 분단 70주년을 맞이했지만, 남북의 화해와 일치, 평화 통일의 찬란한 기쁨의 날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에페 4,31)

몸에 맞지 않는 옷은 행동을 불편하게 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옷도 오래 입다 보면, 마치 제 몸에 잘 맞는 것인 양 착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남북 분단의 현실은 마치 오래 입고 있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다가옵니다. 남북이 갈라진 후 70년이 훌쩍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옥좨는 사슬인 분단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남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을 비롯하여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 ‘10.4 남북공동선언(2007년)’ 등을 통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 남북의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온 세계가 하나 됨을 위해 나아가는 이때에 남과 북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분노와 비난으로 단절의 벽이 점점 높아지고, 상대방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목소리 외에 어떠한 진실한 대화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해 왔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하여 자기방어를 위한 명분으로 군비확장에 힘써 왔습니다. 최첨단 무기와 강력한 살상용 무기로 무장하여 상대방을 위협하면서 그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군비확장과 군사훈련은 결국 서로를 불안하게 만들고, 불신하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또한 도를 넘는 군비경쟁은 주변국에도 영향을 주어 한반도는 동북아 지역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심화된다면 남북문제의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 질 것입니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201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그런데 남북과 관련 국가 사이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영향을 받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남북의 평화통일을 보다 원활하게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 사이의 관계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참된 통일은 지역과 지역이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201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에 우선하는 인도적 차원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간 차원과 정부 차원 공히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가장 긴급한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의 분단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서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으며”(『간추린 사회 교리』, 495항),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간추린 사회 교리』, 517항)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먼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통한 평화 통일을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난 2011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제안한 5가지 사항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을 진행합니다. 이 기도운동이 참된 결실을 맺기 위해서 기도운동에 동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제안을 깊이 되새기고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촉구하며-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운동 담화문>에서

첫째, 남북 당국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한반도의 긴장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한반도의 평화는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민족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다양한 차원의 교류 협력, 그리고 종교 민간 차원의 인도주의적 교류가 재개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주기를 바랍니다.
셋째,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과 긴장상태가 항구적으로 종식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하여 남북 간의 군축문제가 실질적으로 진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을 제거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한 당사국간, 다자간 회담에 적극 임해주기를 바랍니다.
넷째, 남북 교류와 협력, 나아가 통일의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남북갈등 못지않게 심각하게 자리한 남남갈등의 상황을 극복하여, 민족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힘을 모을 수 있도록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합니다.
다섯째, 한반도 평화는 궁극적으로 남북 당사자들의 문제이지만 주변국들의 지지와 지원 또한 중요하므로, 인류의 보편가치인 평화의 실현을 위한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력을 바랍니다.(2011년 6월 1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2015. 6.21 의정부교구 주보 /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더불어 이방인의 땅으로 건너가신다. 요동치는 바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허물어뜨리려고 위협하는 사람들과 나라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역사와 모든 백성의 주님이시다.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상황은 이미 악화되어 있다.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친척들도 당신을 오해하고 있다.
제자들의 두려움은 믿음이 부족함을 상징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활동이 상황을 바꿔 놓고 있음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바다를 잠재우신다. 당신 명령으로 마귀를 이기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여 노예로 만드는 권세가 당신의 지배 아래 있음을 보여주신다. 당국의 박해와 오해를 배척하는 일 외에, 예수께서는 이제 우리의 비겁함과 두려움을 없애셔야 한다.
폭풍이 일어도 예수께서는 태평스레 잠을 자고 계신다.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현존과 승리를 굳게 믿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폭력이 어지러이 춤추고 전쟁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온 인류가 한 마음과 한 몸이 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반드시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면 마음의 평온함을 얻 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