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소양로 공동체 앞에는 ‘봉의산’이라는 나지막한 산이 있습니다. 분지인 춘천 중심에 생뚱맞게 우뚝 솟아 오른 산입니다. 그 산의 기운이 센지 그 주변에 ‘만(卍)자’가 적힌 깃발을 단 무당집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무속신앙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지라 공동체 주변에 무당집이 있는 것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든 생각이 ‘아이들 상담을 하러 가거나 외출을 할 때 성수를 들고 가면 좋겠다’였습니다.
그래서 주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작은 성수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무당집을 지나칠 때마다 사정없이 성수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성모송 한 번을 바치고 “당신의 권능으로 이 잡귀들을 몰아내소서.”라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요? 저는 무심코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분명 ‘만’ 자가 적힌 깃발이 펄럭이던 집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깃발이 없어졌습니다. 언제부터 없었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이사 갔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수와 성모송 한 번, 나름대로 만든 구마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당집에 성수를 뿌리고 성모송을 바치고 구마기도를 바치지만 내 마음 속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온갖 난리를 쳐야지 마귀들린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를 뜻하는 ‘diavolo’가 ‘분리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하느님과 나, 공동체와 나, 형제와 나를 분리시키려는 힘이 바로 ‘마귀’입니다.
내 형제들을 향한 분노, 상대방이 하는 일이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질투,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순명을 거부하려는 힘,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정결의 덕을 깨트리려는 힘, 나의 열정과 시간을 형제 자매에게 나누는 청빈의 덕을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게 하는 힘 등 내 마음 안에서 나를 유혹하고 참된 사랑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려는 우리의 눈을 가리려는 세력과 얼마나 애써 싸우려고 노력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결국 상대방의 마귀를 쫓아내려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애쓰지만, 정작 내 마음 안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는데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해 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는 모두 구마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있는 그리고 너의 마음에 있는 마귀도 내가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 때문에 그 능력을 쓸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그 권한을 깎아 버리는 것, 그리고 그 힘을 썼을 때 직면하게 될 나의 민낯을 볼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사람을 바라보신 시선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한심한 시선이 아닌 애절한 마음과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왜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의 힘을 쓰길 주저하느냐. 두려워하지 말고 쓰거라. 이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라. 나는 자비로운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마음과 상대방 마음에 있는 마귀가 쫓겨나길 기도하며 노력합시다. 나와 상대방을 조종하는 마귀를 증오하고 미워해야지 ‘내 자신’과 ‘상대방’을 미워하고 증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마음을 모아 마귀를 쫓아내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성소를 뒤흔드는 강력한 마귀라 할지라도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살레시오 수녀회 관구관, 성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9,32-38에 대한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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