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스크랩] <실천하는 믿음>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별osb 2014. 12. 4. 09:06

<실천하는 믿음>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마태오 7,21.24-27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내 말을 실행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실천하는 믿음>

그리스도 향기 나는 삶으로써 거룩하고 고귀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고 계시는 믿음의 벗님들께 오늘 하루 주님께서 믿음을 실천할 힘과 지혜를 풍성히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곧 하느님과 갈림 없이 온전히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입이나 머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삶으로써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 2,17)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실천이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성체와 성혈로 생명의 양식이 되어주시고,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은(요한 13,34 참조) 벗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으로써, 하느님 사랑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루카 10,25-28 참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유린하는 사회적 악과 불의에 짓눌린 사람들은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의 현존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을 온 세상 모든 이에게 드러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간의 무한정한 탐욕에 희생되고 사회적 불의에 짓눌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이 있다면 인간 세상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그저 침묵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하느님이라면 필요 없다.’ 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오늘날 무신론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은 항구히 일하신다. 그분은 그리스도교인 전체가 깨어 있고 자신들의 사명을 의식하도록 끊임없이 자신의 영을 보내주신다. 그분은 우리를 통해서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고자 한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느냐, 아니면 반대로 귀를 막고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가만히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느님께 침묵을 강요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나가 하느님을 뜻을 실행하기보다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머무르려는 그리스도인의 위선적인 안이함이 하느님께 다가가려는 이들을 가로막고 있을 뿐입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 하느님을 자신만의 하느님으로 삼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신 예수님을 자신만의 구세주로 모시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이기적인 편협함이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양산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우리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기를 바라시며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다시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 참다운 신앙은 결코 안락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일 수 없는 것으로서, 언제나 세상을 바꾸고 가치를 전달하며 이 지구를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 확실히 “정의가 모든 정치의 목적이며 고유한 판단 기준”이라면,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복음의 기쁨, 183항).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오늘 하루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라는 아버지의 뜻을 올곧은 몸과 마음으로 실행함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벗님들의 고귀한 믿음을 당당하게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안산 와동 일치의 모후 성당
글쓴이 : 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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