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스크랩] <알몸으로 주님 맞이하기> 2014. 12. 02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상지종신부님복음묵상

별osb 2014. 12. 2. 14:08

<알몸으로 주님 맞이하기>

2014. 12. 02 대림 제1주간 화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루카 10,21-24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알몸으로 주님 맞이하기>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과 함께 예수님의 즐거움을 이른 아침부터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값진 사명을 수행하고 기뻐하며 돌아온 일흔두 제자를 맞이하신 후에, 비록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곧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못 배운 철부지 같은 제자들이 당신을 믿고 따름에 대해서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올리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 슬기롭다는 자들, 그리고 철부지들, 모두 예수님을 만나지만 같은 마음, 같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상에서의 우리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성찰해보면, 작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나’와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경험으로서의 나’, ‘지식으로서의 나’, ‘지위로서의 나’, ‘재물로서의 나’, ‘무엇 무엇으로서의 나’가 그것들 입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는 내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다른 이들을 만날 때, 그 만남은 순수할 수 있습니다. 만나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는 나의 삶의 지평을 넓혀주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았던 맑고 순수한 마음의 눈을 가리고 왜곡된 시선으로 다른 것들을 보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나를 둘러싼 껍데기를 벗어야 합니다. 조금만 게으르면 어느 새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가 나의 자리에 비집고 들어와 마치 자신이 진짜 ‘나’인 것처럼 행사하기 쉽습니다.

철부지 어린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또 다른 자신’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것들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물들, 사건들과 있는 그대로 직접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는 늘어갑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을 보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 반대입니다. 점점 더 코끼리를 만지는 소경 꼴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쉽게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시 유혹에 넘어갔다 하더라도, 이내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대림 시기는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나에게 오시지만, 내가 꼭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주님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꼭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내’가 이 만남을 방해할 수 있고,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곡되고 편협한 시선으로 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대림 시기는 ‘나를 둘러싼 또 다른 나’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벗겨내고 마지막 알몸뚱이인 ‘나 자신’이 남을 때, 비로소 나는 나에게 오시는 주님을 온전히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이번 대림 시기는 주님을 정성껏 맞이하겠다는 이유로 오히려 이 것 저 것 또 다른 나로 나를 치장하여, 결국에는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좀 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은 부끄럽겠지만 벗님들께서 입고 계시는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안산 와동 일치의 모후 성당
글쓴이 : 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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