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0,7-15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눈 뜨고 있는데도 코 베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스피싱, 무슨 피싱 종류도 다양합니다. 의심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믿어버리면 손해보는 세상이란 생각에 그렇고 실제로 여기저기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믿지 마, 조심해”
예수님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을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가르침과 치유기적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의심을 품었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을 속이려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무슨 꿍꿍이냐하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몇 년 전부터 sns를 통해 신종사기수법이나 범죄를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꽤 많이 등장하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이 문장이 들어가있으면 대부분 사람들 안의 두려움을 부추기고 확대시키는 가짜 메시지였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위축시키고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만 가두게 합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마음을 닫습니다.
두려움은 열린 소통을 멈추게 합니다. 이것은 남들까지도 보호와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함께 두려워하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나만 두려워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려움의 힘을 잘 아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평화를 빌어주라고 당부하십니다. 평화야말로 두려움을 상쇄시키는 아주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화라는 건 행복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획득의 대상이 아닙니다.
평화는 선물로서 받는 것이며 어떤 상태로 우리에게 옵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두려움이 없는 그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딸을 잃어버릴뻔한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를 잘 뒷받침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저는 한 마디 더 붙이고 싶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을 받아들이십시오.
<의정부교구 병원사목 현우석 신부>
제자들이 받은 사명은 새로운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는 일이다.
이 사명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함으로 써, 그리고 그 나라의 현존을 구체화하는 활동을 펼침으로써 이루어진 다.
그 사명은 감사하면서 가난하게 살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또 그 사명은 ‘평화’ 라는 기본적인 선익을 전해 주는 데 있다. 즉 인간 삶의 모든 면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데 있다.
파견을 받은 사람들은 해방을 가져다주러 온 사람들이다. 그들을 배척하는 것은 구원을 배척하는 짓이고 자기네 위에 심판을 스스로 불러오는 짓이다.
각 나라와 세계 속에서 소수에 지나지 않은 참된 예수추종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제자들의 사명은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하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하는 일이다.
불의한 사회의 고질병을 고쳐나가는 일이다. 불의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많든 적든 그 불의에 물들어 병에 걸려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불의와 단호히 손을 끊고 갈라 서게 만드는 일, 그 병을 고쳐 주는 일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할 일이다.
먼저 내 자신 안에서, 우리 가족 안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그런 고질병을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거기서 출발하여 조금씩 범위를 넓혀나 가는 것이 순서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온 마음과 온 힘을 기울이는 가운데 음식과 옷과 집에 대한 지나친 근심걱정을 털어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느님이 필요한 것을 다 마련해 주실 것이다.
복음 선포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선포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그윽한 평온함, 평화를 누릴 것이다.
사람들이 당장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인내로이 참고 애쓰노라면 언젠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미움과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은 복음을 반대할 것이다. 그럴 경우, 그 미움과 불의에 동조하면서 복음을 선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한결같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그들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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